『여성지우』는 조선여성사에서 1929년 1월 1일에 창간한 월간 종합 여성지이다. 월초 정기발행 기일을 대체로 지켰다. 지금까지는 제2권 제2호만 알려져 왔다. 여기에 소개하는 총 6권 중 창간호 포함 5권은 미발굴 잡지이다. 판권 사항을 먼저 밝히면, 창간호는 1929년 1월, 제1권 제2호는 동년 2월, 제1권 제3호는 동년 3월에 발행되었다. 편집겸발행인은 양천호(梁天昊), 인쇄인은 김윤걸(金允杰), 인쇄소는 기독교 창문사, 발행소는 조선여성사이다. 1929년 9월 13일에 조선여성사는 잡지 『평론』을 발행해 오던 평론사와 합병하여 ‘삼평사(三平社)’를 설립한다. 두 잡지사의 세를 모아서 잡지발행과 도서출판, 조사사업 등을 확장 운영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합병 이후에도 『여성지우』와 『평론』은 변동 없이 각각 발간된다. 『여성지우』 판권지에도 삼평사 이름은 오르지 않고 다만 「사고」란에 저간의 사정이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1930년 발행 판권 사항에는 약간 변동이 있다. 1주년 기념호인 제2권 제1호는 1930년 2월, 제2권 제2호는 동년 4월에 발행되어 월간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데, 편집겸발행인이 김윤걸로, 인쇄인이 김성구(金成九)로, 발행소 주소가 인사동에서 무교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1930년 6월에 발행된 제2권 제3호에 가서는 인쇄소가 한성도서주식회사로 변경되었다. 나머지는 동일하다. 정가는 32전이다. 당대 기사를 통해, 『여성지우』는 1930년 10월호까지 견실하게 발간되어 오다가 잡지사 업무 확장을 위해 인사동으로 재이주하면서 동 잡지를 『女性』으로 개제, 1930년 11월호를 속간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창간 1주년호인 제2권 1호를 보면 조선여성사의 구성원을 파악할 수 있다. 주간 김윤걸 휘하 편집국에 최경혜(崔敬蕙), 엄흥섭(嚴興燮) 김철(金哲)이 있었고 이들은 『여성지우』의 주요 필진으로 활약했다. 외부 필자로는 조선일보사 사회부장 유광렬(柳光烈), 동덕여고교장 조동식(趙東植), 조선농민사 이성환(李晟煥), 김기전, 김기진, 최독견, 박달성, 근우회 중앙집행위원장 정종명(鄭鍾鳴), 근화여학교장 김미리사, 박화성, 황애덕, 유각경 등이 눈에 뜨인다. 주요 문예물로는 김억의 「봄을 읊노라」, 주요한의 「아내」, 여성시 란의 이국화(李國花), 손혜순(孫蕙順), 박숙정(朴淑貞), 김귀덕(金貴德), 이경자(李慶子), 손초악(孫初岳), 이춘희(李春憘), 김귀득(金貴得)의 시편들과 엄흥섭의 「선물」, 「어여쁜 착각」, 최병화(崔秉和)의 「남국에 피는 백합화」, 이주홍(李周洪)의 「치질과 이혼」 등의 소설, 김말봉의 수필 「여기자생활의 속임 없는 고백」, 그리고 윤백남의 「국경선」, 적도생(赤道生)의 「지라단따」, 김영팔의 「뜻있는 여성」 등의 희곡, 김진구(金振九)의 「오성과 한음」, 적도생의 「야괴횡행」 등의 야담이 있다. 필진이 이러할진대 이 잡지에 사회주의 성향이 배어있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지우』는 표지가 어여쁘다. 제2권 제2호의 표지는 이주홍이, 제2권 제3호는 염근수(廉根守)가 그렸다. (해제: 신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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